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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편 '청령포 가는 길'

외로웠다. 반복되는 일 때문에도 외롭고, 답답한 마음 떄문에도 그랬다. 전화번호부를 뒤져봐도 허함을 나눌 마땅한 친구가 없어 또 외로웠다. 나는 언제나처럼 허허 실실 웃어댔지만 돌아서면 바보처럼 힘들어했다. 나의 이런 심정을 아는 사람은 없다. 오직 나 혼자 뿐이었다.

그래서 떠났다. 무작정 짐을 쌌다. 청령포와 장릉을 제 1의 목적지로 잡고, 오래 전부터 벼르고 있던 하회마을을 제 2의 목적지로 잡았다. 동선과 머물 곳은 미지수로 두었다. 흰 도화지에 그때그때 어울리는 색을 채워 넣기로 했다. 편하기 위해 시간과 머물 곳을 미리 예약해 두는것이 자유로운 여행에 되려 방해가 될 것 같았다. 




영월의 첫 인상, 포근한 ‘영월이 아줌마’

영월에서의 하룻밤은 코리아파크 모텔에서 보냈다. 혼자서 모텔에 머문다는 사실이 왠지 겁났다.  애써 외면했지만 자꾸만 눈길이 머무는 기구들 때문에도 불편했다. 맛있어 보인 만두국은 국물 두어 모금 떠먹고 더 이상 당기지 않아 버렸다. 평소엔 잘 먹지 않는 아이스크림도 기분 전환겸 샀다가 녹는 속도를 먹는 속도에 맞추지 못해 버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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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한 곳에서의 모든 것은 낯설었지만 처음 마주한 영월의 인상은, 옆집의 인자한 '영월이' 아줌마 같은 익숙하고 친근한 느낌이었다. 땡땡이 주황색 목폴라 니트를 입고 분홍색 립스틱으로 곱게 단장한, 제법 예쁜 영월이 아줌마가 ‘환영한다 혜미야’ 하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 

어린 임금의 눈물

인간의 간사함일 수 있으나 원래 나보다 더 못한 사연을 접할 때 마음은 위로를 받는다. 아, 나보다 더 힘들겠다 싶어 가슴 저리지만, 덕분에 투덜대지 말고 감사하며 살자고 결심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 않을까. 나는 어린 홍위가 안타까웠고, 홍위를 위로하며 외로움을 보상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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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의 풍경이 아담하고 소박해 마치 여백의 미가 훌륭한 한 편의 수묵화를 감상하는 듯 했다. 청령포까지 방문객을 실어 나르는 나뭇배는 저쪽에서 홍위가 나를 기다릴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며 고전 동화 속의 그림같이 보였다. 한편 이 정도 규모라면 헤엄쳐서 도망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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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책 ‘어린 임금의 눈물’ 을 보면, 6월 22일 (1475) 한양을 떠나 살곶이다리를 건너 화양정을 지나, 광나루에서 배를 타고 여주 이포나루를 거쳐 원주, 부론, 신림, 주천을 지나 이레 만에 영월 청령포에 도착한다.' 라고 적혀있다. 그러니 헤엄쳐 도망치는 것 자체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을 테고, 성공했다 해도 마땅히 갈 곳이 없었던 홍위에게 최선의 선택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실에 갇혀서 억지로 가는 인생을 살아야 했던 홍위의 삶을 숙명이라고 하기엔 가혹하다. 역사 속 인물들은 언제나 현실 온전히 받아들여야 하고, 거부할 땐 생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다. 지난 삶이 대부분 그랬다.


홍위가 제임스딘으로
환생한건 아닐까



눈가가 항상 촉촉했을 것만 같은 홍위의 얼굴이 그려졌다. 불현듯 이미 다시 태어나 한번 더 살고 가진 않았을까. 싶었다. 혹시 슬픈 눈의 '제임스 딘'에게 그의 영혼이 담긴 건 아니었을까. 아니면  눈물 몇 방울을 닮은 마룬 파이브(Maroon 5)의 보컬 아담 레빈의 목소리가 홍위의 영혼을 타고 울리는 건 아닐까. 묘한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사실이라고 믿는다면 나는 단종의 영혼을 출근길마다 듣는 셈이다.

"알 수 없는 미래, 그리고 꿈꾸는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에,
젊은 날은 언제나 슬프다."

단종의 젊은 날도 슬프고, 곧 사라질 내 청춘도 힘겹다. 젊은 날이란 게 나와 홍위처럼 슬프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것을 즐길 수 있는 것 역시 젊음의 특권일 것이다. 서울보다 일찍 찾아온 영월의 코스모스가 나를 반긴다. 콧등에 부딪힐 듯 날아드는 잠자리 떼의 등 위에 마음 속 짐들을 얹어 날렸다. 그리고 계속 쭉.. 나도 모르는 길을 향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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